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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6 군사혁명으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대통령이 그의 조카사위이자 2인자인 김종필 씨를 앞세워 자유당 때부터 시작한 한일회담 14년 만에 1965년 한일협정을 타결하였다. 

   한국 지배 36년간의 배상액은 정부 부분 무상 3억 달러, 유상 2억 달러, 민간 상업 차관 3억 달러 등 총 8억 달러였다. 이중 유상 2억 달러는 산업시설과 기계류 공공차관 형태로 7년 거치 13년 분할 상환, 연 3.5% 금리를 적용하였다. 유상 부분은 공공시설과 기반시설 등에 투자하기로 일본과 약속하였다. 

    

   일본에서도 자금의 쓰임새를 살펴보는 조건이었기에 항간의 소문인 김종필 씨나 박정희 대통령의 일본 자금 착복설은 완전 허구였다. 

    

   전체 청구권 자금의 56%가 포항제철과 기간산업, 경부고속도로 등 SOC 확충에 사용되었다. 

   소양강 다목적댐 2천만 달러, 경부고속도로 700만 달러, 상수도 확장 400만 달러, 한강 철교 복구 90만 달러, 영동화력발전소 180만 달러, 철도 시설개선 2천만 달러, 그리고 포항제철 건설에 무상자금 3,100만 달러와 유상자금 9,000만 달러 등 총 1억 2천만 달러를 투자하였다. 급하게 서두른 협약으로 배상 액수가 너무 적은 것이 아니냐는 여론이지만 중국은 아예 단 1달러도 받지 않겠다는 배포를 보인 사례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 

    

   중국은 중·일 관계가 정상화되었을 때 일본의 기술 투자를 원해서 많은 일본 공장이 중국에 투자하였고, 그 결과 중국의 기술 수준이 괄목할 정도의 발전을 보였다.   

   지금도 한일협정에 북한과 함께해야 했다는 좌익 세력의 불만이 난무하지만, 어쨌든 그 자금이 종잣돈이 되어 우리나라 중화학 공업 발전의 발판이 된 것은 사실이다. 

    

   일본과의 청구권 문제가 해결된 결과가 다른 면에서 눈에 띈 것은 1970년경부터 일본인 관광객이 부쩍 서울 거리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인에 의해 우리나라 관광 산업이 활성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인들은 한국에서 고궁 관람하고 인삼과 홍삼, 김과 김치를 산후 면세점에서는 한국의 자수정을 싹쓸이하다시피 하였다. 

    

   이 때문에 자수정 가격이 몇 배나 오르는 기현상을 빚었다. 보석다운 보석이 없는 우리나라는 경상도 언양에서 질 좋은 자수정이 생산되어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산출량이 적어 내국인에게는 크게 어필하지 못하였다. 언양 자수정은 색상이나 내포물, 투명성에서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품질이다. 눈치 빠른 일본인들이 이 자수정을 싹쓸이한 것이다.

    

   일설에 의하면, 일본인이 처음으로 서울 관광을 시작하면서 일본 외교부에서 자국민에 대해 관광교육을 시행했다고 한다. 아직 한국에서는 일본인에 대한 적개심이 있기 때문에 말과 행동을 조심할 것과 서울에서 구매할 만한 것은 인삼이나 홍삼, 김과 자수정뿐이라고 교육했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가 과거 조선 사람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잘 알고 있다는 증거였다. 

    

   일본인들은 극히 조직적이고 수동적인 사람들이라 정부에서 시키거나 교육을 하면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레밍족 인간들로 국가의 지시나 시책에는 군말 없이 따르는 습성이 있다.

    

   그때는 우리나라에서도 일본이나 유럽에 여행할 때 반공교육을 하였는데 가장 강조하는 것이 북한 사람 특히 조총련 사람을 조심하라고 하였다. 또 실제로 조총련과 얽혀서 생고생한 사람도 많이 있었다. 

    

   우리는 전쟁 상태인 북한과의 이데올로기와 사상 문제가 심각하였기에 호기심으로 조총련 사람들을 만났던 사람들은 엄청난 오해를 받고 심한 조사와 닦달을 받았다. 반대로 선의를 가지고 조총련 사람을 만나 술 한잔 사주었는데 조총련 사람들에게 약점을 잡혀 협박을 당하는 일도 있었다. 그래서 당시는 해외여행 시 반공교육이 필수였다.

    

   아무튼, 일본인들은 일본 외무성에서 교육받은 대로 너도나도 자수정만 찾았다. 본래 자수정은 유럽의 성직자들뿐만 아니라 세계의 상류층에서 선호하는 색상의 보석이다. 가톨릭에서는 자주색(Purple)을 하나님이 계시는 하늘의 청색과 인간의 피(예수님)가 섞인 고귀한 상징색으로 여기고 있다. 그래서 바티칸의 성직자들이나 천주교 사제들은 중요 기념일에 자수정 반지를 끼고 제례복 중에서도 보라색 옷을 대축일에 착용하는 것이다. 

    

   하기는 우리나라 자수정이 유독 보라색 색상이 뛰어나 일본인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탐을 내는 보석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남한에서는 언양에서만 질 좋은 자수정이 나오고 수량이 너무 적다는 점이다. 수량이 적으니까 고가를 유지하는 이유도 된다. 

    

   자수정은 오발 형으로 윗면을 연마했을 때 진가를 발휘한다. 최상급 자수정은 중량으로 거래하였으므로 편법으로 탄생한 것이 윗면을 카보션(Cabochon)으로 연마하는 것이다. 카보션 커팅을 했을 때 무게가 더 나가는 것을 악용한 것이다. 그래서 보석 상식이 있는 자수정 애호가는 그 카보션 돌을 다시 리커팅하기도 하였다.

    

   일본인들은 한반도를 지배했었다는 우월감에서 중앙청 관광을 무척 좋아했는데 김영삼 정부가 중앙청을 철거할 때 음으로 양으로 많은 반대 의사를 표하였다고 한다. 일본인들은 유럽에서도 Sex Animal이라고 손가락질을 받더니 결국 우리나라에서도 기생관광에 몰두하여 한동안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었다. 

    

   그들은 전쟁터에서도 위안부들을 끌고 다니며 그 짓을 하는 것이 사기진작이 되는 것으로 착각하는 민족이다. 태생이 저질의 인간들이다. 일본인들의 만행은 남경 학살 당시의 사진에서 보듯이 중국 여자들에게 필설로 다 표현 못 하는 온갖 악행과 만행을 저지른 바 있다. 

     

   일본인의 한국에서의 기생관광도 1974년 8.15일 광복절 기념식에서 조총련계 문세광이 육영수 여사를 저격한 사건으로 막을 내렸다. 따라서 일본인 관광객의 발길이 끊어지고 관광 산업도 위축되었다가 1970년대 말에 회복되었다.

    

   여담이지만 1981년 사가와라는 일본인 유학생이 파리에서 동거하던 네덜란드 여학생을 살해하고 그 인육을 요리해 먹은 사건으로 유럽에서 질겁했는데 일본인의 잔혹성을 극적으로 보여준 사례이다. 

   이 사건을 보면 일본인의 내면에는 잔혹한 칼잡이들의 피가 흐르는 모양이다. 그들의 변태 기질은 아마도 근친혼에서 발생한 유전적 요인일 가능성이 아주 크다는 학자들도 있다. 일본인들은 4촌 간의 결혼은 아주 흔한 일이고 지방 분권 시대에 전쟁에서 이긴 쪽이 패자 쪽의 여인네들을 독차지하여 자기 수하에게 분배하는 것이 전통이기도 하였다.

    

   일본인 개개인은 겉으로는 아주 친절하지만, 속마음을 보이는 일이 거의 없다. 흔히 말하는 혼내와 다테마에(本音と建前)로 너무나도 극명한 이중성을 보이는 것이다. 본마음인 혼내(本音, ほんね)는 개인의 본심과 속셈을 가리킨다. 

    

   이에 반해 겉마음을 뜻하는 다테마에(建前, たてまえ)는 일반적인 주위의 의견을 제 의견인 양 동조한다. 일단 이 두 정신구조는 대립하는 것이지만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표변하는 것이 일본인이다. 

    

   현재는 자수정이 거의 고갈되어 고품질의 자수정은 구하기가 몹시 어려워졌다. 외국산이 들어오긴 하지만 국산의 품질과 너무 차이나서 자수정 거래가 거의 끊기고 수요도 격감하였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참고로, 북한에서는 금강산과 묘향산에서 질 좋은 자수정이 산출되고 있다.

   

   이성재/ 전 (사)한국귀금속감정원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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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2-10-24 10: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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