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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의 공화당 정부에서는 국유재산이던 반도호텔을 롯데에 매각하고, 경성 철도호텔을 조선호텔(주)에 매각하여 민간 자본을 유치하고, 대대적인 투자를 촉구하여 관광 산업을 활성화하기로 하였다. 

이를 계기로 외국 관광객을 적극적으로 유치하기 위하여는 여러 가지 인프라를 조성하기로 하였다. 

 

그 전 단계로 워커힐 호텔을 신축하여 한강을 조망하는 숙박 시설과 카지노를 열었고, 워커힐 쇼 무대를 화려하게 개장하였다. 개관 기념으로 세계적 대스타인 루이 암스롱을 초청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워커힐만으로는 관광객 유치의 인프라가 부족하고 또 워커힐은 교통이 외진 곳이어서 시내 관광이 불편하였다. 정부의 속셈은 한강변에 워커힐 호텔을 지어서 서울 시내의 낙후된 모습을 숨길 의도였고 카지노 도박장이라는 안 좋은 인식을 불식시키려는 속셈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워커힐 호텔을 지으면서 중앙정보부의 정치적 입김으로 김종필 중정부장이 언론에 오르내렸고, 일반인은 출입 불가여서 국민들의 인식은 별로였다.

이러한 복잡한 사정을 불식시키고자 정부에서는 서울시청 앞의 반도호텔 전면부와 조선호텔 일부를 회랑 식으로 에워싸는 아케이드(종합상가)를 계획하였다. 

 

당시 외국인 관광객이 늘기 시작하였고, 주한 미군과 그 가족들 수만 명이 서울 관광을 하면서 쇼핑센터나 쉼터가 절대 부족했으므로 정부의 기획은 시의적절하였다. 당시는 단 1달러의 외화가 절실하던 때였다. 오죽하면 여학생들이 가발 수출을 돕고자 머리를 기르자는 애국(?) 운동이 일어났겠는가? 

 

관광이란 단순히 버스 타고 고궁 구경하고 불고기 백반이나 먹는 것으로 끝내서는 안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볼거리, 먹거리, 놀거리와 충분한 휴식을 취한 후 구매 욕구를 충족시킬 계기를 만들어 주어야 진정한 관광 산업이 되는 것이다. 외국 관광객은 고궁이나 빌딩보다는 우리나라의 속살인 남대문 시장, 동대문 시장에서 손뼉을 치고 발을 구르며 “골라 골라”를 외치는 상인들의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한국인의 역동성을 보는 것이다. 

 

또한, 노을을 배경으로 소가 짊어질 볏단을 가족 같은 소가 애처로워 농부가 직접 지게에 지고 가는 우리 농부들의 선한 심성이 드러나는 풍광에 외국인들이 더 좋아하고 매료된다는 것이다.

외국 손님들은 재래시장 풍물을 구경하고 기념이 될 만한 물건으로 겨우 우리나라 아리랑 인형이나 인삼차를 구매하였다. 그들은 더 사고자 하여도 살만한 상품이 그때는 없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전란을 겪었음에도 친절하고 상냥하며 정직하고 후덕한 인심과 부지런한 사람들의 일상에서 우리나라의 장래를 점치며 한국의 희망을 보았을 것이다. 

이런 풍광에 심취해야 한 번 더 한국을 방문할 욕구가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구매 욕구를 충족할 상품을 계속 개발하고 생산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취지로 1965년 완공된 반도 조선 아케이드에는 귀금속, 토산품, 민예품, 인삼과 홍삼, 양장, 남성복, 선물 가게 등이 입주하였다. 대지 970평에 지하 4층, 지상 2층으로 5,400여 평의 아케이드(종합상가)가 완공되었다. 지하 1층과 지상 1층에는 2천여 평의 상가가 들어서고, 지하 2~4층에는 주차장이 있어서 국내 최고의 시설이었다. 

 

이 아케이드에는 최신 에스컬레이터와 냉난방 시스템을 완비하여 당시로써는 더 할 수 없는 호화 시설이었다. 2층에는 각종 음료수를 갖춘 카페와 조경수, 쉼터가 있어서 덕수궁과 시청을 건너다보면서 차 한잔하고 담소를 나누었다. 더불어 이곳은 젊은 남녀들의 데이트 코스이기도 하였다. 

 

당시 서울에 있는 아케이드(종합상가)는 종로 2가 화신백화점 건너편의 (SC제일은행 자리) ‘신신 아케이드’와 조금 늦게 지은 흉물스럽게 말발굽 형태로 파고다 공원을 둘러싼 2층 상가를 지은 ‘파고다 아케이드’ 등 3개 아케이드가 있었다. 

 

그렇지만 말만 아케이드일 뿐 시설도 낙후되었고 진열 상품조차 일반 재래시장과 차별화된 품목이 없었다. 이에 반해 반도 조선 아케이드에는 시설도 깨끗하였고 최고의 상품만 갖추었으며 통역원까지 상주하였으므로 외국인들과 주한 미군들과 그 가족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고 있었다. (* 아쉽게도 이 두 곳 아케이드에도 금은방이 몇 곳 있었지만,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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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 호사다마라고 반도 조선 아케이드는 1970년 1월 17일 그 추운 겨울에 이웃 건설현장의 실화 불이 옮겨붙어 삽시간에 화마가 휩쓸며 전소되었다. 가장 추운 겨울철이라 소화전의 물도 얼고 소방차도 부실하여 상가 전체가 완전히 전소하였다. 일반 상품을 진열하였던 상점들은 통째로 잿더미가 되었다. 

 

이러한 아수라장 속에서 일부 금은 상들은 희비가 엇갈려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곳의 귀금속상 중 에메랄드(主. 김**), 티파니(主. 백**), 루비(主. 김**) 등 몇몇 상점은 금고 덕분으로 고스란히 진열품과 지폐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귀금속점 다이애나(主. 맹**)는 금고문을 열자 내부 열기가 식지 않았던 관계로 오히려 불꽃이 일어나 현금이 모두 잿더미가 되고 보석제품은 불길에 모두 훼손되었다. 국산 금고가 화염을 이기지 못하고 내부가 벌겋게 달궈져 있었다고 한다. 귀금속상 중 외제 금고는 제 기능을 하였고, 국산 금고를 설치하였던 다이아나는 내화(耐火) 성능 부실로 전 재산을 잃은 것이었다.

 

더욱 불행하였던 것은 금은방은 화재 손해보험 가입을 거절당해 피해를 보상받지 못한 점이었다. 

지금도 금은방은 화재보험 가입을 기피당하고 있고, 다만 건물에 대해서만 가입할수 있다. 진열품의 가격 산정이 어렵다는 핑계이지만 고가 상품에 대한 배상이라 보험 가입을 꺼리는 것 같다. 하루속히 개선되어야 할 사항이다. 

 

이 화재사건을 계기로 국산 금고가 불신을 사고 배상 문제로 다툼도 일어났다. 국내 금고 업체들은 이때의 화재사건을 큰 교훈으로 삼아 내화 성능을 크게 개선하였고, 기능과 디자인 면에서 큰 발전을 이루어 외국에 수출하면서 많은 찬사를 받고 있다고 한다. 

 

후에 이 반도 조선 아케이드 자리를 롯데가 인수하여 롯데호텔을 건설하여 명동 일대가 새로워지고 반도호텔이 누렸던 영화를 롯데가 이어받게 되었다.

 

참고로, 조선 시대 원각사 절이었던 파고다 공원은 3.1운동 당시 독립 선언서를 낭독한 역사적인 장소로, 1970년 2층 아케이드를 지었으나 기부채납 기한인 1982년 11월 철거가 시작되어 1984년 현재의 공원으로 재단장되었다.



전 (사)한국귀금속감정원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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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2-10-04 13:5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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